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의 종언을 선언한 이유(미야자키 하야오, 자전적 고백, 지브리 종언)

by crewong 2026. 3. 2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당황스러웠습니다.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 같은 명쾌한 판타지에 익숙했던 터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난해함은 제게 일종의 배신감처럼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두 번째 관람 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평생 숨겨왔던 모순과 죄책감을 고백하는 유서이자, 팬들에게 건네는 가장 잔인하면서도 지극한 이별 선언이라는 것을요. 2023년 7월 개봉 당시 일본에서 84억 엔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지만(출처: 일본영화제작자연맹), 관객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긍정 86%, 부정 14%라는 리서치 결과가 이를 증명하죠. 30대가 된 지금, 저는 이 영화가 왜 이토록 불편하면서도 아름다운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대표 포스터

무홍보 전략과 100억 엔 제작비의 진실

이 영화가 개봉 전까지 단 한 장의 포스터도, 예고편도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지브리의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는 "정보 과다의 시대에 정보가 없는 게 오히려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건 단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2022년 결산 자료를 보면, 총 자산 267억 엔에 순자산 비율 92.4%라는 놀라운 재무 건전성을 자랑합니다(출처: 일본 기업정보). 여기서 재무 건전성(Financial Soundness)이란 기업이 빚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자본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지브리는 돈을 빌리지 않아도 작품을 만들 수 있을 만큼 탄탄한 스튜디오라는 뜻이죠.

 

일반적인 일본 상업 영화가 제작비 10억 엔으로 30억 엔을 벌어들이는 걸 목표로 하는 반면, 이 작품은 100억 엔 이상을 쏟아부었습니다. 7년간 손으로 그린 셀 애니메이션(Cell Animation) 방식을 고집했는데, 이는 디지털 작업이 아닌 투명한 셀룰로이드 시트에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려 촬영하는 전통 기법을 말합니다. 

분석 항목 상세 내용 비고
제작 기간 약 7년 (2016년 ~ 2023년)
역대 최장 제작 기간
제작 방식 100% 수작업 셀 애니메이션
디지털 채색 최소화
제작비 약 100억 엔 추정
일본 영화 사상 최고액
주요 테마 자전적 고백, 상실과 수용, 현실로의 귀환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서

 

실제로 써보니 이 무홍보 전략은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저 같은 팬들은 오히려 더 궁금해서 극장을 찾았지만, 일반 관객들은 "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며 당혹스러워했거든요. 요네즈 켄시와의 모스 부호 소통, 엔딩 크레딧의 배역 숨기기 같은 소소한 화제거리만으로는 대중의 호기심을 완전히 채우기 어려웠던 겁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영화로 기존 흥행 공식을 깨고 싶어 했지만, 결과적으로 100억 엔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마히토의 자해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평생 모순

영화 초반, 주인공 마히토가 스스로 머리를 돌로 찍어 피를 쏟는 장면을 보셨나요? 저는 그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자해가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이 평생 짊어진 죄책감의 시각화였으니까요.

 

미야자키 감독의 아버지는 전쟁 중 군수 공장을 운영하며 부를 쌓았습니다. 감독은 평생 반전(反戰)과 평화를 외쳤지만, 정작 본인은 전쟁으로 배 불린 집안의 혜택을 누리며 자랐죠. 2013년 저서 《겁쟁이 애국 담》에서 그는 "우리 아버지는 자기 결핵이 첫 부인에게 전염되어 죽게 만들었다고 고백했다"며 아버지의 이중성을 폭로했습니다. 마히토가 깔끔한 의복과 모자에 집착하는 모습은, 전쟁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도덕적으로 깨끗한 척했던 감독 자신의 위선을 상징합니다.

 

저도 30대가 되면서 비슷한 모순을 느낍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 시스템 안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제 모습이 마히토와 겹쳐 보이더군요. 영화 속 큰할아버지가 쌓아 올린 13개의 돌은 미야자키 감독이 만든 13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의미합니다. 그 완벽한 판타지 세계(지브리 작품 세계관)는 사실 와라와라를 잡아먹는 펠리컨처럼, 수많은 창작자의 희생과 감독 자신의 모순 위에서 간신히 버텨온 성채였던 겁니다.

 

마히토가 큰할아버지의 후계 제안을 거부하고 "이곳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며 현실로 돌아오는 결말은, 미야자키 감독이 자신의 창작 세계를 스스로 부정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곧 지브리라는 아름다운 거짓 세계의 종언을 선언하는 것이죠. 주머니에 남은 작은 돌조각 하나는, 지브리가 사라진 뒤에도 우리 가슴속에 남을 '성찰의 씨앗'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는 또한 두 개의 모성을 그립니다. 병약하지만 강인한 히사코(감독의 실제 어머니 미야자키 미코를 모델로 함)와, 불꽃처럼 목숨을 거는 히미. 미야자키 감독의 어머니는 10년간 결핵을 앓으며 어린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감독은 "엄마에게 업어 달라고 조르자 등허리가 아픈 엄마가 울면서 거절했다"는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았죠.

 

영화 속 히미가 마히토에게 '투모로(Tomorrow)' 잼을 듬뿍 발라준 토스트를 주는 장면은, 감독이 평생 받지 못한 건강한 엄마의 사랑에 대한 간절한 소망입니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내일의 잼은 있지만 오늘의 잼은 없다"는 구절처럼, 그 사랑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미래의 것이었으니까요.

 

제가 이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가장 울컥했던 건, 나츠코가 산실에서 마히토에게 "왜 왔냐"며 소리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건 나츠코의 본심이 아니라, 마히토를 지키기 위한 정반대의 말이었죠.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때, 그 이면엔 종종 더 큰 사랑이 숨어 있다는 걸요. 마히토가 비로소 나츠코를 "엄마"라고 부르는 장면은, 타인의 모순을 받아들이는 성장의 순간이었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붕괴하는 성채와 현실의 계승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창작자의 위선과 그것을 인정하는 용기
  • 완벽한 판타지 세계의 허구성과 현실로의 귀환
  •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적 불완전함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모습을 투영한 캐릭터

저는 이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장 정직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관객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대신, 이 영화는 "내 탑은 무너져야 한다. 너희는 이 아름다운 가짜 세계에 머물지 말고, 피 냄새나고 추악하더라도 진짜 너희 현실로 돌아가라"라고 말합니다. 이는 팬들에게 건네는 가장 잔인하면서도 가장 지극한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왜가리가 마지막에 "금세 잊어버릴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도 의미심장합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이건 별거 아니다. 그저 내 인생과 다름없는 꿈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겸손함이 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저 역시 토토로 같은 가벼운 영화로 지브리에 입문해 30대가 된 지금, 이 무거운 고백을 마주하며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우리는 지브리라는 성채 안에서 행복했지만, 하야오는 그 성채가 무너져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가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57HCigXvUU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크루옹의 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