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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어쩔 수가 없다> 해석: 도끼(The Ax)가 된 자본과 중산층 자아의 해체 (중년의 위기, 해고, 존재증명)

by crewong 2026. 3. 25.

저도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성과급을 받아 가족들에게 소고기를 사주며 "우리 이제 됐어"라고 말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의 유만수처럼 저 역시 제가 쌓아 올린 것들이 영원할 거라 믿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바로 그 순간의 허상을 도끼로 내리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완벽해 보이던 중년 가장의 삶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 중산층 남성들이 마주한 실존적 공포를 냉소적으로 파헤칩니다.

영화 어쩔수가 없다 대표 포스터

직함이라는 가면의 박탈: '태양제지' 유만수가 직면한 존재론적 사형 선고

영화는 유만수(이병헌)가 가족들과 바비큐를 즐기며 "지금 내 기분이 어떤가요?"라고 묻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20년 넘게 태양제지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고, 어린 시절 살던 집을 직접 되사서 손수 고치고 꾸몄습니다. 아내와 자녀들, 반려견까지 갖춘 완벽한 가정. 그러나 미국계 사모펀드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모든 게 달라집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울컥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중년 남성으로 산다는 것은 나를 정의하던 '직함'이 사라지는 순간 사회적 사형 선고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해고를 의미하는 '도끼질(axe)'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도끼란 단순히 고용 종료가 아니라 한 인간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베어내는 상징입니다(출처: 베니스 국제영화제). 쉽게 말해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존재의 소멸'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만수가 느끼는 낙차는 특히 가혹합니다. 올해 펄프맨상까지 받았던 그가 하루아침에 구조조정 대상이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경력이 길다는 건 곧 연봉이 높고 나이도 많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효율성을 앞세운 자본은 가차 없이 그의 목을 칩니다. 3개월간 필사적인 구직 활동 끝에 그는 누군가의 바지자락을 붙잡을 만큼 비참해지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절뿐입니다.

 

제가 자의로 선택한 게 아니라 상황이 선택하게끔 만든 거니 저를 탓하지 말라는 논리. 이것이 바로 만수가 반복하는 "어쩔 수가 없다"는 주문의 본질입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한 강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이죠.

블랙 코미디의 외피를 쓴 비극: '고추잠자리'와 슬랩스틱이 폭로하는 무능한 폭력

만수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같은 자리를 노리는 실직자들을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만든 허위 구인 광고를 통해 경쟁자들의 이력서를 수집하고 등급을 매기는 장면은 소름 끼칩니다.

 

타겟은 세 명입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이 파탄 난 범모, 일본 제지업계 경력에도 불구하고 구두 가게 점원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고시조, 그리고 지금은 잘 나가는 제지 회사 반장인 최선출. 흥미로운 건 이들 역시 만수처럼 종이밥을 수십 년 먹어온 인생들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동시에 몰락해 있다는 점입니다. 

제거 대상 (경쟁자) 사회적 위치 및 배경 상징적 의미 만수의 시선
범모 알코올 중독 및 가정 파탄 추락한 가장: 미래의 거울 혐오와 공포
고시조 구두 가게 점원 (전문직 퇴보) 기술의 사장: 무용지물이 된 숙련도 연민과 동질감
최선출 현직 반장 (유능한 경쟁자) 대체 가능한 부품: 시스템의 승자 질투와 살의
유만수(본인) 해고된 베테랑 (중산층 집착) 시스템의 희생양: 무의미한 생존자 자기 합리화

 

하지만 보통의 중년 남성인 만수의 계획이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블랙 코미디의 본질은 여기서 드러납니다. 범모의 집에서 총을 두고 벌이는 몸싸움 장면은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큰 볼륨으로 흐르는 가운데 펼쳐지는데, 예측 불가능한 슬랩스틱과 폭력 사이를 오가며 참담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솔직히 이 장면들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만수가 보다 치밀하게 계획을 실행할 거라 생각했는데, 영화는 오히려 그의 무능함과 도덕적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고시조와의 대화 장면에서 만수는 따뜻했던 가장과 악으로 변한 가장의 양면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최선출과의 음주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리얼한 만취 연기로, 타겟을 향한 동질감과 연민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인적 자원의 효율성 잔혹사: ROI(투자 수익률)와 AI 자동화가 설계한 살인 게임

영화의 제목이자 만수의 입버릇인 "어쩔 수가 없다"는 면책부(免責符)입니다. 이는 자신의 비도덕적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외우는 현대판 주문이죠. 미국 본사도 해고를 통보하며 같은 말을 하고, 새로운 고용주 역시 AI 자동화 시스템 도입을 정당화하면서 같은 말을 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여기서 ROI(투자 수익률)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ROI란 투자한 자본 대비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었는지를 나타내는 경영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사모펀드 입장에서 만수 같은 고연봉 베테랑 직원은 ROI가 낮은 자산이므로 제거 대상이 되는 것이죠.

제 경험상 이런 구조조정의 논리는 냉혹합니다. 아내 미리(손예진)가 제안하는 현실적인 대안들, 즉 집을 팔거나 업종을 바꾸는 것을 만수가 거부하는 이유는 그가 '중산층 가장'이라는 허울뿐인 지위를 잃는 것을 죽음보다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증명하는 전시관입니다.

 

마지막 면접 자리에서 만수는 "적어도 한 명 정도는 필요하지 않냐"라고 말하며 결국 그 자리를 꿰찹니다. 하지만 로봇이 종이를 옮기는 불 꺼져가는 공장에서 그가 쾌재를 부르는 장면은 뼈아프게 슬픕니다. 그가 얻은 자리는 이미 AI와 자동화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 시한부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유만수가 그토록 노력하여 지켜낸 중산층 가정의 모습

 

영화는 노동이 더 이상 자아를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계급을 유지하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줍니다. 만수의 무의미한 책략은 결국 무의미했고, 결과조차 공허합니다. 그가 바랬던 삶의 형태를 얻기 위해 개처럼 날뛰며 사람들을 파묻은 게 과연 가치 있는 삶이었는지 영화는 냉소적으로 묻습니다.

 

저는 원칙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사람입니다. 만수에게 저런 상황이 닥친다면 저는 결국 그런 선택을 못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 영화가 무섭습니다. 남성들은 특히 사회에서의 존재와 가정에서의 가장 역할, 이 두 가지가 굉장히 큰 존재 이유로 작용합니다. 나의 존재 이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선택이 나를 파괴한다는 역설을 이 영화는 정확히 찌릅니다.

 

박찬욱 감독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1997년 소설 'The Ax'를 현대적 맥락에 맞게 각색했습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은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의 외피 속에 자본주의의 도끼질과 AI 자동화라는 현대적 공포를 겹쳐 담아냈습니다. 이병헌의 연기는 커리어 정점이라 할 만하며, 손예진이 연기한 미리는 영화의 정서적 중심으로 가족의 운명을 조율하는 현실주의자입니다.

 

정신없이 극장을 나서는 길, 저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비유와 은유들을 아무리 씹어도 쓴맛과 단맛이 교차하는, 돈값을 충분히 해내는 어둡고 기묘한 희극이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영화에 대한 해석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영화 비평이 아님을 밝힙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77Yes279dV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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