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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비> 해석: 켄의 실존적 소외와 글로리아의 연설이 남긴 선전물 논란 (페미니즘 논란, 켄의 캐릭터, 결말 해석)

by crewong 2026. 4. 3.

영화관을 나서며 든 첫 생각은 "우리는 정말 이렇게까지 편을 갈라 싸워야만 하는가"였습니다. 화려한 핑크빛 비주얼과 라이언 고슬링의 열연 뒤에 남은 건,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깊은 피로감이었습니다. 영화 <바비>는 분명 재치 있는 블랙 코미디로 출발했지만, 중반 이후 급격히 프로파간다(정치적 선전물)로 변질되며 본래 가진 가능성을 스스로 무너뜨렸습니다. 여기서 프로파간다란 특정 이념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선전 도구를 의미합니다.

영화 바비 대표 포스터

켄의 결핍과 가부장제의 풍자: 소외된 존재들이 꿈꾸는 '켄덤'

켄은 바비가 쳐다봐 줄 때만 존재 의미를 찾는 캐릭터입니다. 영화 초반, 그는 바비랜드에서 철저히 소외된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 설정은 의외로 현실의 많은 남성에게 묘한 동질감을 줍니다. 저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 있는 남성', '든든한 보호자'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지워가며 살아갈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켄이 현실 세계에서 '가부장제'라는 개념을 접하고 매료되는 장면은 꽤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여기서 가부장제(Patriarchy)란 남성이 가정과 사회에서 주도권을 갖는 체제를 뜻합니다. 켄은 현실을 '말(Horse)'과 '맥주'로 단순화하여 받아들이는데, 이는 남성 중심 사회의 허세를 유쾌하게 뒤트는 풍자였습니다. 어딘가에 속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결핍을 건드린 장면이죠.

 

실제로 켄이 바비랜드를 '켄덤'으로 바꾸려는 과정은 블랙 코미디로서 충분히 작동합니다. 바비들에게서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상한 바비'의 존재 역시 완벽해 보이는 바비랜드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줍니다. 2023년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88%를 기록했지만(출처: Rotten Tomatoes), 관객 평점은 이보다 낮은 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 장면들에서 드러납니다. 

분석 항목 바비랜드 (초반부) 켄덤 (중반부)
권력 구조 바비 중심의 모계 사회
켄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상징 요소 핑크색, 완벽한 일상, 파티
말(Horse), 맥주, 마초적 허세
소외 계층 존재감 없는 '켄'들
이간질당하는 '켄'들
비판적 시각 완벽주의에 대한 풍자
가부장제에 대한 블랙 코미디

예술과 선전의 경계: 글로리아의 연설이 무너뜨린 서사의 균형

켄이 현실에서 의사나 해상구조대가 되려다 거절당하는 장면은 '여성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슬로건에 대한 괜찮은 풍자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균형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영화 중반까지만 해도 이 작품이 양측을 모두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가 될 거라 기대했습니다. 바비랜드도 잘못되어 있고, 현실도 잘못되어 있는 모양새였으니까요.

 

영화가 완전히 무너진 순간은 글로리아의 일장 연설 장면입니다. "여성은 직장인과 어머니로서 동시에 존재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내용의 이 연설은 관객에게 사유의 공간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영화적 장치로서의 서사가 아니라, 감독이 메가폰을 들고 관객을 훈계하는 '강연장'으로 변질된 순간, <바비>는 예술이 아닌 선전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비랜드를 내려다 보는 바비의 모습

 

더 심각한 문제는 이후 전개입니다. 바비들은 '여성적 특성'을 십분 활용해 켄들을 질투하게 만들어 분열시킵니다. 여기서 '맨스플레인(Mansplaining)'이란 남성이 여성에게 불필요하게 설명하려 드는 행동을 뜻하는데, 영화는 이를 켄의 본성처럼 그려냅니다. 그리고 켄들이 서로 싸우는 동안 바비들만으로 구성된 법원에서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이 '날치기 법안 통과' 시퀀스는 영화가 가진 민주주의적 가치관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켄들을 이간질하고 속여서 얻어낸 승리를 '정의'로 포장하는 전개는, 결국 "우리가 당했으니 너희도 당해봐라"라는 식의 보복적 쾌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며 가장 실망한 지점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앞서 쌓아왔던 블랙 코미디의 빌드를 스스로 때려 부수는 전개였기 때문입니다.

분열을 넘어선 연대의 부재: 휴머니즘이라는 이름의 작위적 마침표

저는 이 영화를 보며 현대 사회의 갈등 구조를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결국 보잘것없는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탕수육 찍먹 부먹으로 싸우고, 갤럭시를 쓰면 아저씨고 아이폰 쓰면 허세라며 진영을 나눠 싸우는 것처럼요. 영화 <바비> 역시 이런 갈등 구조를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흘러갔습니다.

 

실제로 영화 개봉 후 온라인 반응을 살펴보면, '그냥 켄'이라는 표현이 남성을 비하하는 밈(Meme)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밈이란 인터넷에서 빠르게 퍼지며 변형되는 문화적 요소를 의미합니다. 영화는 휴머니즘적으로 끝냈다고 하지만, 과연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였을까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3년 20대 남녀의 성별 갈등 체감도는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출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런 상황에서 <바비>는 대화가 아닌 분열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영화가 휴머니즘으로 급선회하는 결말 역시 뜬금없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바비가 실존적 위기를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가 주로 다뤄온 것은 성별 갈등이었습니다. 이 문제가 봉합된 뒤 갑자기 "바비에게 정해진 엔딩은 없다"라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기존 서사와 결이 맞지 않는 해답이었습니다. 저는 이 결말이 페미니즘 이야기에 대한 반발을 우려해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의 마무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바비가 부인과를 방문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망과 겹쳐 생물학적 여성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여성으로 규정하는 소수자들까지 포용하는 엔딩이라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워낙 정치적으로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을 강조하다 보니, 이런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습니다. PC란 특정 집단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도록 언어와 행동을 조심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영화 <바비>는 분명 좋은 지점들을 많이 가져왔습니다.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 라이언 고슬링과 시무 리우의 켄 캐릭터 연기
  • 무시받는 켄보다 더 하층인 앨런의 설정
  • 마고 로비를 캐스팅하고 "못생겼다"는 대사를 치는 자기 반영적 유머

조금만 더 줄타기를 잘 해냈다면 충분히 괜찮은 컬트 영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줄타기가 관객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그레타 거윅 감독과 마고 로비의 욕심에 의해 어긋난 순간, 영화가 들인 많은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믿고 거르는 페미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바비>를 보며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차별을 말하되, 세상의 반인 남성을 비하하며 적으로 돌리는 것과 나쁜 사람과 선한 사람이라는 다른 구분법을 사용하여 남성과의 연대를 꾀하는 것, 어느 쪽이 더 현명한지는 명확합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나 <원더우먼>이 좋은 페미니즘 영화로 평가받는 이유는, 차별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남성 모두를 적으로 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비>가 후자의 길을 선택했다면 훨씬 더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거라 확신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8xKNubqevg&t=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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