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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 용의 출현> 리뷰: '학익진'의 시각화와 데이터로 승리한 지장(智將) 이순신 (박해일 연기, 학익진 전술, 거북선 활약)

by crewong 2026. 2. 26.

한산도대첩을 다룬 영화가 1,760만 관객을 동원한 명량의 후속작으로 나왔습니다. 솔직히 전작을 봤을 때 저는 과도한 신파와 애국 마케팅에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8년 만에 나온 이번 작품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김한민 감독이 비판을 수용하고 전술 중심의 해전 블록버스터로 진화했더군요.

영화 한산 대표 포스터

침묵의 카리스마: 박해일이 구현한 '데이터 지상주의' 이순신

일반적으로 이순신 장군 하면 최민식의 울부짖는 카리스마를 떠올리는데, 박해일의 이순신은 정반대였습니다. 대사도 적고 표정 변화도 최소화했지만, 그 침묵 속에서 전략을 짜는 눈빛이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처음엔 "너무 로봇 같은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부하가 물어봐도 길게 대답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에도 담담하게 "출정하라", "발포하라" 정도만 말하더군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이게 의도된 연출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침묵 속에서 담담하게 전략을 짜는 이순신의 모습

 

최민식의 이순신이 용장(勇將)으로서의 뜨거운 카리스마를 보여줬다면, 박해일은 지장(智將)으로서의 냉철함을 택한 겁니다. 전술 시뮬레이션을 돌리듯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부하들에게 절대적 신뢰를 주는 방식이죠. 이순신 장군이 실제로 난중일기에서 보여준 문관적 면모, 즉 기록과 계산에 철저했던 모습을 반영한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실수를 남발하는 수군에 대한 이순신의 너그러운 대응은 의아했습니다. 실제 이순신은 군법 집행이 엄격하기로 유명했거든요. 그 공포와 신뢰의 양면성이 조선 수군의 위력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많이 순화된 느낌입니다.

학익진(鶴翼陣)의 기하학: 판옥선의 화력과 기동성을 극대화한 포위 전술

전작 명량에서 가장 아쉬웠던 게 난잡한 해전 장면이었는데, 이번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학익진(鶴翼陣)이라는 거대한 전술 체계를 관객이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했더군요.

 

학익진은 말 그대로 학(鶴)의 날개처럼 배를 펼쳐 적을 포위하는 진형입니다. 영화에서는 조선 수군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왜군을 유인하고, 적이 달려들면 양쪽에서 포위해 일제 포격을 가하는 과정이 아주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특히 판옥선들이 서서히 펼쳐지며 거대한 학의 날개를 만드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CG 기술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4천 회전을 회상하는 초반 장면에서 배 위, 외부, 부감샷이 자연스럽게 전환되며 전투의 흐름을 보여줬고, 한산도 해전 본편에서는 조선 수군의 편제와 통신 방식까지 디테일하게 묘사했습니다. 연을 날려 지휘관의 명령을 전달하고, 지휘선의 지붕을 덮어 화살 공격을 방어하는 장면은 고증에도 충실했습니다.

 

솔직히 이 정도 해전 연출을 가능하게 한 김한민 감독과 촬영팀은 인정받아야 합니다.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함대전을 이렇게 명쾌하게 보여준 한국 영화는 처음이거든요. 제가 극장에서 봤을 때 전술 게임을 하는 듯한 몰입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돌격선의 재발견: 거북선의 층수 논란과 '충파(衝破)' 전술의 실체

거북선의 등장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거북선 하면 최종 병기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제 경험상 실제 역사에서 거북선은 적진을 헤집고 들어가 진형을 무너뜨리는 '돌격선' 역할이었습니다.

 

영화에서도 이 점을 정확히 반영했습니다. 원균이 무능하게 트롤 행위를 하며 조선 수군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나대용이 이끄는 2층 거북선이 왜군 한복판으로 돌진합니다. 마치 중세 기병대가 적진을 돌파하는 것 같은 짜릿함이 있더군요. 거북선이 왜선을 들이받고 화포를 쏘며 지나가자 왜군의 어진 진(魚鱗陣)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분석 항목 <명량> (용장의 사투)
<한산> (지장의 설계)
이순신 캐릭터 뜨거운 카리스마, 불굴의 의지
차가운 지성, 치밀한 계산
핵심 전술 백병전 및 대장선의 고군분투
학익진을 통한 함대 단위 포위전
거북선의 위상 전설 속 유령선 (심리적 상징)
실전 투입된 돌격용 장갑함 (전술적 실체)
연출 톤앤매너 신파와 애국심 중심의 감성
전술 전개 중심의 담백한 이성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거북선의 구조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을 모두 담은 점입니다. 나대용은 3층 거북선의 측면 약점을 보완한 2층 거북선을 설계했고, 용머리를 안으로 접을 수 있게 만들어 충파(衝破) 능력을 극대화했습니다. 이 설정은 학계에서 논쟁 중인 거북선 구조 논란을 영리하게 우회한 선택이죠.

 

다만 거북선이 '몰래' 나타난다는 설정은 좀 과했습니다. 무슨 잠수함도 아니고 갑자기 전선에 등장할 수는 없잖아요. 그냥 이순신의 전술 계획대로 적절한 타이밍에 투입되는 걸로 그렸어도 충분히 짜릿했을 겁니다. 제가 봤을 때 나대용이 마치 변수처럼 등장하는 연출은 오히려 이순신의 치밀한 계획을 약화시키는 느낌이었습니다.

유능한 적장이라는 양날의 검, 긴장감을 상쇄시킨 와키자카의 분투기

한산도대첩은 명량대첩과 달리 압도적 승리였습니다. 이순신은 연전연승 중이었고, 판옥선 56척에 달하는 함대를 지휘했습니다. 반면 명량은 겨우 12척으로 300여 척을 막아낸 기적 같은 전투였죠. 그러니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 영화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유능한 장수로 띄웠습니다.

 

와키자카는 시즈가타케 전투에 참여한 경력도 있고 실제로도 능력 있는 장수였습니다. 영화에서도 거북선의 약점을 파악하려 하고, 설계도를 훔치려 하고, 철갑선을 타고 이순신을 직접 저격하려는 등 신중하고 영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능한 적장 와키자카의 모습

하지만 저는 이게 과했다고 봅니다. 와키자카의 서사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오히려 와키자카의 분투기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압도적인 승리인 한산도 해전에서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적장을 유능하게 설정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주인공의 비중을 침해한 '서사적 불균형'을 초래했다. 와키자카의 대사와 등장 장면이 이순신보다 많더군요. 그리고 와키자카를 띄우려다 다른 왜장들이 지나치게 무능하게 묘사된 것도 아쉽습니다.

 

특히 가토 요시아키는 실제로는 맹장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와키자카한테 당하고 물러나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이건 좀 억지스러웠어요. 그리고 실제 한산도대첩에서는 왜군이 대포를 쏜 기록이 없는데, 긴장감을 위해 와키자카가 포격을 가하는 장면을 넣은 것도 고증 오류입니다(출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장르적 진화와 상업적 소구점의 괴리: '신파'를 걷어낸 한산의 담백한 도전

저는 전반적으로 이 영화에 만족했습니다. 과도한 신파가 사라지고, 전술 중심의 리얼한 해전 블록버스터로 거듭났으니까요. 김한민 감독이 8년 동안 비판을 수용하고 진화한 모습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명량처럼 폭발적으로 흥행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명량을 본 관객들은 사실 좋은 영화여서가 아니라, 애국심을 자극하고 신파로 눈물 짜는 그 '맛'을 원했던 거거든요. 한산은 그런 자극적인 조미료를 뺏기 때문에 대중적 호소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명량>의 흥행 공식(신파)을 과감히 버린 김한민 감독의 선택은 "한국 관객의 수준 향상에 따른 장르적 진화"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포장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 전술적 면모에 집중한 게 진짜 이순신을 존중하는 길이니까요. 이제 남은 건 노량: 죽음의 바다인데,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을 어떻게 그릴지 벌써부터 기대되면서도 걱정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FgiDjgEp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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